버드나무

Salix koreensis Andersson LOD 상세 작성자 : 박희준 감수자 : 정규영
버드나무

잎은 좁은 피침형 또는 피침형이며 긴 점첨두이고 예저로서 길이 5-12cm, 폭 7-20mm이며 표면은 녹색이고 털이 없으며 뒷면은 흰빛이 돌고 중륵위에 털이 있으나 점차 없어지며 가장자리에 안으로 향한 톱니(내유선거치)가 있다. 또 뾰족하고 선상의 톱니가 있으며 양면에 기공이 있다. 엽병은 길이 2-10mm이고 털이 약간 있거나 또는 없다. 꽃은 자웅이주로서 4월에 피고 웅화수는 길이 1-2cm로서 화축에 털이 있으며 포는 타원형이고, 길이 1.5mm정도로서 면모가 밀생하며 밀선과 수술이 각각 2개이고 수술대 밑에 털이 있다. 자화수는 길이 1-2cm이며 화축에 털이 있고 포는 녹색으로서 난형이며 털이 있고 밀선은 1-2개이다. 자방은 난형으로서 대가 없으며 털이 있고 암술대는 약간 길며 암술머리는 4개이다. 꽃이 빽빽이 있다. 열매는 삭과로서 난형이며 과실꼭지가 없고 5월에 익는다.

관련이미지

문화

조선시대에 불씨를 갈아주는 궁중의 개화(改火)행사에서 버드나무는 귀중한 몫을 했다. 태종 6년(1406) "예조에서 봄에 만드는 불은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서 취한다." 했으며, 성종 2년(1471)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양지(楊枝)를 씹으면 다섯가지 공덕이 있으니, 첫째로는 입냄새가 향기롭고 깨끗하다. 둘째로는 목구명이 맑고 깨끗하다. 셋째로는 가래와 먹은 음식이 잘 삭고, 넷째로는 입맛이있다. 다섯째로는 눈에 병이 없다. - 여기의 양지(楊枝)는 일반적으로 버드나무로 본다.

역사

조선 성종8년(1477)에 비상을 버드나무 상자에 담아 권숙의 집에 던진 것이 중궁 윤씨를 폐하는 빌미가 되었으며, 숙종 27년(1701)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하여 지금의 창경궁 통명전 연못가에 각시와 붕어를 넣은 버드나무 상자를 묻었다가 발각되어 사약응 받았다. 성종 15년(1484)에는 대비와 왕대비가 거처하는 창경궁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빨리 자라는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
인현왕후 , 성종 , 창경궁 , 숙종

약용

가지 껍질을 거풍이습(祛風利濕), 소종지통(消腫止痛)에 이용하고, 꽃을 거습(祛濕), 지혈(止血)에 이용한다 기원 전 5세기 무렵 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임산부가 통증을 느낄 때 버들잎을 씹으라는 처방을 내렸고, 이후 1853년에 와서야 처음으로 아스피린의 주성분인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를 추출했으며, 1899년에 이르러서야 독일 바이엘사의 젊은 연구원인 펠릭스 호프만이 상용화 하였다.

관상

가로수, 풍치목으로 활용

산업자원

쇠죽바가지, 나막신, 기구재 등의 재료로 활용

환경자원

물을 정화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옛날 우물가에 많이 심었다.

외부정보

ko.dbpedia.org

버드나무

data.kdata.kr

버드나무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서지정보 테이블입니다.
KMU200319417 KMU200319418 KMU200319416 KMU200319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