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관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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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문화_설명 |
비단과 베 옷 정도가 전부였던 고려 말 가난한 백성을 항상 겨울을 춥게 지내야 했다. 그러나 목화로 만든 무명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아주 뛰어난 옷감이었는데 목화솜은 이불의 솜으로도 쓸 수 있고, 옷 속에도 집어넣어 따뜻한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었다. 누구나 쉽게 목화를 재배하고 수확한 솜으로 실과 옷감을 만들 수 있으니 목화는 우리 의류 문화에 커다란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목화와 관련된 세시풍속으로 정초에 목화농사의 풍년을 점치는 유모일보기, 삼묘일보기등과 정월대보름의 목화놀이, 이월 초하루의 목화풍년놀이가 있다. 일제감정기에는 목화 공출을 위해 목화농사를 강제로 장려하기도 했다.
목화농사가 농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목화농사와 관련된 민요가 활발하게 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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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음식_설명 |
목화의 다래를 이용한 셀룰로스 식이 음료 개발이 가능하고 목화 씨앗을 이용한 목화차(면화자차)의 개발도 가능하다, 목화 음료에 재배된 스테비아 잎을 첨가함으로써 단맛이 우수한 목화 음료 개발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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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역사_설명 |
목화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남부, 인도, 인도네시아, 안데스산맥 북부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도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인도에서는 기원전 3000년, 페루에서는 기원전 2500년,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500년경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의 목화재배는 1363년(공민왕 12) 문익점이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할 때 목화씨를 얻어 붓통에 넣어와서 그의 장인 장천익과 함께 재배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문익점 면화시배지는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이다. 정천익은 3년의 시험 끝에 재배에 성공하였다. 문익점의 손자 래(萊)는 제사법을 발명하였으며 손자 영(英)은 면포 짜는 법을 고안하였는데 그 뒤 100년도 되지 않아서 널리 보급되었다.
문익점이 도입한 목화는 아시아면이었는데 1905년에 일본영사 다카마쓰가 육지면을 도입하여 전라남도 고하도에서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경기도 이북에서는 주로 아시아면이 재배되었고, 경기도 이남에서는 육지면이 재배되었다.
목화는 강원도, 함경남도 일부 및 함경북도를 제외한 각 지방에서 재배되었는데, 특히 전라남도, 경상북도, 평안남도, 황해도가 주 생산지였다. 오늘날 연간 세계 목화 총생산량은 약 1, 500만 톤으로서 최대 생산국은 소련, 미국, 중국, 인도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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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산업_설명 |
유전자 전이된 식물에 대한 네오니코디노이드의 용도, N-(포스포노메틸)글리신 및 이의 유도체를 사용하여 작물의 수확량을 증가시키는 방법, 트리아진 유도체, 고시폴 또는 그 유도체를 유효성분으로 함유하는 모발성장촉진제, 면실자 추출물을 함유하는 모발성장촉진제에 과한 특허가 출원되었다. 목화다래와 추출물로 기능성 화장품과 클렌징 및 목화다래를 성분으로 하는 항암제가 개발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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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약재_설명 |
목화의 종자를 면화자라고 하는데 남자의 양기 부족에 소주를 넣고 볶아서 파고지, 구자등과 배합해서 복용하고 유뇨, 탈항에도 쓰인다. 부인의 자궁출혈과 대하에도 효력을 나타내고 유즙분비를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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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관상_설명 |
학습용이나 관상용으로 허브원이나 토종식물 공원에 심겨 있다. 요즘도 목화가 재배되긴 하나 염색해서 꽂꽂이를 한다던 지의 실내장식용으로 주로 이용된다,
허브 샵 같은 곳에 가면 목화솜을 활용하여 포푸리로 응용하여 걸어 두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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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종_설명 |
목화명나방Notarcha derogata, 목화수염진딧물Acyrthosiphon gossypii, 목화진딧물Aphis gossypii, 목화자색씨벌레Earias cupreooviridis, 목화붉은씨벌레pectinophora gossypi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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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향신료_설명 |
종자에서 기름을 짜서 샐러드유, 올리브유의 대용품을 만들고 마가린, 비누의 원료로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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