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역사_설명 |
집비둘기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에 이집트에서 인도비둘기를 길들여 사육한 것이 시초이며 그 뒤 인도·중국·그리스·로마에서도 사육하여 여러 차례 개량을 거듭한 이래 지금까지 500종 이상의 집비둘기가 사육되고 있다.
-------------------------------------------------------------------------------------------------------------------------------------------------------
상림원의 화초와 집비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게 하다
명하여 상림원(上林園)의 화초(花草)와 집비둘기를 자원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9장 B면
-------------------------------------------------------------------------------------------------------------------------------------------------------
예조가 일본 사신이 《대장경》 등을 요구하니 줄 수량을 묻다
예조가 이르기를,
“일본 국왕 원의고(源義高)가 중[僧] 주반(周般) 등을 보내어 서신을 가져오고, 금병풍 2벌, 채화선(彩?扇) 1백 자루, 필연대(筆硯臺) 1개, 베개 20개와 내랑통(奈良桶) 2개를 바치고, 이내 《대장경(大藏經)》, 면포(綿布) 5천 필, 호표피(虎豹皮) 5백 장과 백응(白鷹)·앵무새·백아(白鵝)·산작(山雀)·팔팔조(八八鳥) 등 진귀한 새를 요구하는데, 《대장경》은 전지에 붕중(?中)이 가지고 갔으니 다시 줄 수 없으며, 백응은 매를 부릴 줄 알지 못하는 왜인(倭人)이 가지고 가기가 어려울 것이며, 앵무새는 우리 나라의 소산이 아니고, 백아·산작·팔팔조는 잡아서 기르기가 어려우니, 빛깔 있는 집비둘기·흑백(黑白) 가박계(呵拍?)·무늬 있는 오리·꿩 등을 각각 암컷 수컷으로 대신 보내기로 하고, 면포와 호표피는 줄 수량을 수의(收議)하시기 바랍니다. ”
하니, 윤필상(尹弼商)·성준(成俊)·이극균(李克均)이 의논드리기를,
“일본 국왕의 사신이 금년에 두 번이나 왔으니 그들의 청구를 모두 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면주(綿紬) 1백 필과 면포(綿布)·정포(正布) 각 20백 필을 주어 보내고, 호표피(虎豹皮)는 민간에서 갖추기가 어려운 물건이니, 각 2장씩을 회사(回賜)하는 예물 속에 아울러 넣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자, 그대로 좇았다. 【태백산사고본】 11책 43권 24장 A면
-------------------------------------------------------------------------------------------------------------------------------------------------------
정유길과 이양이 제술한 시와 서문의 의미가 합당하여 가상히 여김을 전교하다
우참찬 정유길(鄭惟吉)과 예조 판서 이양(李樑)이 제술한 시와 서문을 입계하니, 전교하였다.
“경들이 지은 시와 서문을 보니 글의 의미가 아주 합당하다. 내가 가상하게 여긴다. ”【지금까지 수년 동안 상은 경연에 나아가는 것을 게을리하고 사장(詞章)에 뜻을 두었으며 서화와 새 기르는 것을 아주 좋아하였다. 내신(內臣)이 출사(出使)할 때는 화사(?史)를 대동하고 가서 지나가는 곳 중의 명승지를 묘사하여 그것으로 병풍을 만들었다. 화사 4∼5명이 항상 궐내에 있었으며 집비둘기·닭·오리를 널리 구하여 금원(禁苑)에서 길렀다. 심지어는 그것들을 돈을 주고 사서 바침으로써 은총을 구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28권 25장 B면
|